[나눔과 구제] 나눔과 구제의 황금률

발행일: 2025년 10월 23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21세기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이 되면 모두가 풍요롭고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 미래를 위해 오늘의 희생을 감내해 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기 어렵고, 오히려 위기의 징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이나 질병이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사회는 점점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결국 ‘각자도생’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모두가 휩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대로라면 사회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미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로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대에 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잠언 11장 24절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될 수 있으며, 과도하게 아껴도 더 가난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내가 상황이 어려우니 좀 더 나아지면 헌금도 하고, 기부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면, 성경은 단호하게 그 본성을 거스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황과 관계없이, 작은 것이라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구제와 섬김을 실천하면 오히려 더욱 풍성해진다는 약속입니다. 25절에서는 구제를 좋아하면 풍족해지고, 남을 윤택하게 하면 자신도 윤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흔히 자신이 빛나기 위해 남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남의 명성에 기대거나, 학벌이나 인맥을 자랑하며, 자산가를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도적으로 상대를 빛나게 하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 빛나는 행성에 사는 존재들입니다. 영원한 진리의 빛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그분의 말씀대로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그들을 빛나게 하며 영육간에 부유하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는 내가 부유해진 후에 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만 살겠다고 각자도생의 길을 걷다 보면, 나도 힘들고 다른 사람도 힘든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구조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영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이유도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속에서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눔과 구제의 범위를 현금이나 교회 봉사 등으로만 좁게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율법을 재해석해 주신 말씀을 보면, 적용 범위는 무한대로 넓어집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한다는 전제로 행동하면, 내게 보내주신 가족과 이웃을 섬기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며, 풍성한 은혜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침노하여 빼앗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거대한 양극화와 각자도생의 길에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상생과 공동체로 나아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상생과 협력의 공동체성이 풍성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ㅊㅈ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