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앙헬레스] 바늘과 실로 잇는 하나님 나라

발행일: 2025년 9월 10일

필리핀 팜팡가주 앙헬레스시는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900여 명이 사망하고 2만여 명이 집을 잃었던 큰 자연재해의 아픔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2009년, 한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지금은 번화가가 된 ‘프랜쉽 한인 거리’에는 여전히 무너진 건물과 잔해가 남아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서구권을 제외하면 영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자유롭게 사용하는 나라로, 당시 한국 학부모들에게 영어 유학지로 각광받으며 많은 영어학원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로 독일식 놀이교육과 교구활동을 겸한 사립유치원을 운영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도심 속 오지, 아누나스 다리 아래에서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가정들로 이끄셨습니다. 2012년부터 현지인 교회를 섬기며, 아누나스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온 자매들의 초청으로 구역예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2017년 팬데믹을 2년 앞두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바랑가이 아누나스 4구역에 아누나스행복한우리교회가 건축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후 여러 성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중 두 세대에 걸쳐 의류수선을 하고 있는 Deng이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는 각각 아버지가 다른 세 자녀와, 미성년자인 딸이 낳은 손녀까지 네 아이를 70대 노모와 함께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Deng의 노모는 화산폭발 당시, 동네 사람들이 귀중품을 챙기고 달릴 때 ‘싱어 재봉틀’을 안고 뛰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가족의 생계와 손재주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Deng은 손끝이 야무져서 교복이나 의류 수선을 맡기면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깔끔하게 완성해 손님이 제법 많았습니다. 지역 미인대회가 있을 때면 드레스와 전통의상 디자인을 받아 제작하는 일도 도맡았습니다. 하지만 삶은 늘 불안정했고, 좋은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식구들 중 가장 궁핍한 처지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짊어진 삶의 무게는 그녀를 자주 흔들었고, 어느 날은 술에 취해 걸려온 Deng의 전화를 받고 밤새 잠을 설친 적도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젊은 인구가 많지만,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많은 가정이 불안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팜팡가주 클락과 앙헬레스시는 과거 미군기지 영향으로 국제화와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관광·성매매·도박에 의존하는 구조가 자리 잡아 사람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번쩍이는 유흥가 워킹스트릿의 이면에는 Deng의 가족처럼 깨진 가정, 가족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유흥가로 내몰리는 아이들, 불안정한 노동 환경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사역을 하면서, 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아누나스 지역에서는 단순한 구제나 일시적 후원만으로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고, 지속 가능한 자립과 믿음을 세워주는 선교와 비즈니스 사역이 절실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봉제 직업훈련을 시작하며, 마스크 품귀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아누나스 주민들에게 직접 마스크를 제작해 나누었습니다. 또 그룹별 유니폼을 디자인해 졸업작품으로 유니폼 패션쇼도 열었습니다. 2022년, 긴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 필리핀 국경이 다시 열리고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을 때, 선교 환경의 위축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이 아누나스 선교지에도 찾아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훈련에 쓰였던 인력과 장비들을 아누나스행복한우리교회의 비즈니스 선교(BAM) 소잉서비스라는 사업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현재 아누나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소잉서비스라는 수선샵과 파스카라는 생수가게입니다. 교회에 제빵과 봉제 관련 전문가가 있어서 이를 훈련 시킬수 있는 기술학교 또는 센터를 시작하려고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기반의 컨텐츠나 쇼핑몰 사업을 시작할수 있도록 IT교육도 시작하길 희망합니다. 이를 위한 자원이 충족되기를 함께 기도해주세요.ㅊㅈㄱ

필리핀 아누나스행복한우리교회
이정은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