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의 의미] 나의 주권을 내려놓는 신앙고백 커리큘럼, 헌금

발행일: 2025년 10월 1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 동산 중앙에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이 ‘선악과’는 사람이 받아 누리는 창조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지 않도록 세워주신 교육 자료였습니다. 우리에게 헌금은 ‘선악과’와 같이 자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내게 있는 물질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헌금 생활은 내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교육 커리큘럼이 됩니다.

“헌금은 율법인가요? 율법에 십일조와 같은 구체적인 명령이 기록되어 있나요? 만약 헌금이 율법이 아니라면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이런 질문 앞에서 헌금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는 도구가 됩니다. 헌금 생활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점검하게 해줍니다.

어떤 행동이 거룩한지 아닌지를 정해 놓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헌금을 꼭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도 되는지, 또는 헌금을 강조하는 것이 맞는지 틀린지 지나치게 따지는 것도 율법주의적인 태도일 수 있습니다. 헌금의 실천은 주일 성수와 유사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며 주일을 기쁘게 지킵니다. 헌금도 이와 같습니다. 헌금을 드린다고 해서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받은 은혜와 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기쁘게 드릴 수 있습니다.

헌금 생활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십일조는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자신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유를 나누는 행위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한 행동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4절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유를 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초대교회에서 헌금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한 사람은 아마도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바울이 사울이라 불리던 시절, 이방 땅의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경험했습니다(행 11:28–30). 큰 흉년이 들었던 때, 헌금은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이어주는 형제애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여러 이방 지역 교회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전달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9장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연보를 가르치며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즉, 바울은 헌금(연보)을 이방 교회들과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헌금은 고백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드리는 것’의 기본 전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전제 위에서 물질을 다루는 성경적 태도가 곧 청지기 정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의미는 ‘축복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선포하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헌금에 의미를 담으시길 바랍니다. 헌금을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표현하는 행위로 사용하시길 권합니다. 헌금 생활을 받은 복을 세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도구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헌금의 모양과 양보다 헌금의 기능, 즉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청지기로서의 고백’에 마음을 두시길 바랍니다. 헌금과 헌금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큰 유익이 있습니다.ㅊㅈ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