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앙헬레스] 실패가 남긴 기록, 다시 시작하는 비즈니스 선교

발행일: 2025년 12월 10일

2009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필리핀으로 이주해 생계를 위해 다양한 소규모 비즈니스를 시도했습니다. 성공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선교지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사를 하는 일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 사람과 시스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정임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 실패의 경험들이 앞으로 같은 길을 걷게 될 누군가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저의 기록을 나눕니다.

첫 시도는 2010년경, 필리핀 대형몰 푸드코트에서 김밥,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을 판매했던 경험입니다. 한국 식재료의 높은 원가와 조리 과정의 복잡함,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과 가격대가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장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많이 팔면 된다’는 계산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실패로 돌아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선교지에서도 음식의 ‘가격 자리’라는 기본 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어 영어튜터 친구들의 요청으로 한국 화장품 소규모 판매를 시도했지만, 현지 소비문화와 맞지 않았고 대금 지불이 늦어 재고 손실이 컸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는 서구 브랜드를 선호했고, 서민층에는 한국 제품마저도 고가였습니다. 시장조사 없이 주변의 말만 믿고 위탁판매를 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상품이 좋아도 소비자의 니즈와 소비 패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동생의 제안으로 MVP 형태의 한국 양말 샘플링도 시도했습니다. 품질과 디자인은 좋았지만, 현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기본 양말이었고, 이미 저렴한 중국산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만 샀고, 소량 구매와 후불 요구로 재고 부담이 컸습니다. 상품의 품질보다 소비자의 필요와 시장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절감했습니다.

교회 설립 전, 성도 두 명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시작한 반찬가게 겸 구멍가게도 실패했습니다. 비용 관리와 기록 부재, 가족과 지인의 무단 소비, 임대주의 과도한 요구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운영자에게 책임 구조가 없으면 관계 중심의 운영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는 정직한 재정관리와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그 경험을 통해 지역 리더와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는 생수 사업을 시작했지만, 배달과 관리의 어려움, 경쟁 업체의 증가로 결국 교회 멤버에게 위탁하고 월세만 받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꿨습니다. 작은 마진에도 더 큰 관리력이 필요하고, 선교지에서는 환경 변수가 많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 여러 실패를 하나로 연결해 보면 공통된 그림이 보입니다. 시장 조사가 부족했고, 소비자의 삶과 지불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원가 구조와 가격 설정의 기본 원리를 간과했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사업이었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의도보다 시스템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실패는 오히려 선교적 비즈니스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시장의 필요를 정확히 이해할 것.
둘째, 가격과 원가의 구조적 균형을 잡을 것.
셋째, 시스템 없는 관계 중심 운영은 위험하다는 것.
넷째, 현지 문화와 소비 패턴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

이 모든 실패 끝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소잉서비스라는 옷수선가게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봉제는 현지인들과 한국 교민들의 실제 필요에 정확히 맞았고, 재고 손실의 위험도 거의 없었습니다. 기술을 통해 지역 여성과 청년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작업과 결제 과정이 단순하고 투명해 관리도 용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업을 교회와 지역 공동체, 기술 교육, 청년 훈련, 자립 기반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선교적 플랫폼으로 발전시켜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선교지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만들고 수익을 내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시장의 구조를 이해하고, 문화의 흐름을 존중하며, 사람을 세우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하나의 사역임을 깨달았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을 고치는 과정이었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더 적합한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맞춤 지도였습니다. 감정이나 선한 의도만으로는 선교지에서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으며, 시장 분석, 가격 구조, 운영 시스템, 현지화 전략 같은 기본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동시에, 비즈니스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로잡아 가고 있습니다. 성공이 더 좋지만,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 큰 힘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길 위에서 같은 고민을 품고 걸어가는 이들에게, 내가 지나온 흔적이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필리핀 아누나스행복한우리교회
이정은 선교사 

지난 글 보기
[필리핀/앙헬레스] 바늘과 실로 잇는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