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수빅] 상처와 감사, 그리고 성장의 필리핀 선교 이야기

발행일: 2025년 11월 26일

저는 필리핀에 온 지 16년, 사역도 어느덧 16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선교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한국에서의 훈련과 저의 성격, 달란트를 이곳에서 사용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필리핀에 왔을 때, 이 나라가 선교지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인데, 왜 여기가 선교지일까? 복음이 들어간 나라인데 왜 이렇게 잘 살지 못하고, 거짓과 물질로 인한 살인, 부정부패, 성적인 죄들이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이미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에 바뀌기는 어렵고, 그들과 정의로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수를 바로 알고, 예수로 인해 삶이 변화될 기회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떠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한국 사람이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은 힘들어해서 중간에 그만두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대학도 가고,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3년의 훈련 끝에 3명의 전도사가 남아, 지금은 함께 다시 어린 학생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 전도사들은 믿음의 훈련과 한국어 덕분에 필리핀에서 높은 셀러리를 받으며, 함께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한 명의 전도사가 합류했는데, 13년 만에 처음으로 저의 방식에 반기를 들어, 저 역시 큰 정신적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상처가 참으로 필요했던 것임을 고백합니다. 필리핀의 문화적·정서적 특성을 모두 수용하고 맞춰서 훈련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들을 단호하고 강하게 훈련했습니다. 그 정서가 이들을 무기력하고 믿음 없이 보이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제가 그렇게 강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약속을 깨고, 거짓말하고, 게으른 것이 이들에게는 정서상의 특징이고, 모두가 그냥 넘어가는 일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고치려 했습니다. 13년 동안 이들이 스스로 하기를 바라며, 저 혼자서 모든 것들을 지고 끌고, 제 행함을 보이며 프로젝트를 주어 일하게 했습니다. 감사함으로 스스로 하기를 바랐고, 싫어하는 일들은 저 혼자서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 점심 설거지, 더러운 것 치우기, 아웃리치 주일학교, 화장실 고치기, 건축, 악기 수리 등 하드웨어적인 일들을 도맡았습니다. 프로젝트를 정해 시키는 것도 대부분 제가 했고, 아이들이 스스로 정해 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시켰습니다. “사모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 그거 하고 싶어요. 저 이거 가르쳐주세요.” 이런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이 변화하기엔 아직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고백을 들으며 서로 상처받았다고, 함께 울었습니다. 똑같은 사건으로 서로 아파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오기까지 13년이 걸렸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묵묵히 참고 기다렸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은 필리핀에서 추방당해야 할 일이고, 벌써 헤어졌어야 할 사건이었지만, 우리는 13년을 함께하며 같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번 고백을 통해 앞으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잘 해나가기를 바라며, 저는 이제 그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네, 잘 할 것입니다. 이제는 못해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일들을 봐왔기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성취감에 기뻐하고, 좌절도 하며 제자들을 잘 훈련해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팬데믹이 올 줄도 모르고 2020년부터 한국에서 몇 가지 일을 하려 했습니다. 선교가 무엇인지 더 공부하고, 전도사들을 한국으로 데려가 다문화 선교를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비즈니스 선교를 공부하게 하시고,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기업을 경영하게 하셨습니다. 막 시작한 회사를 잘 마무리 짓고, 필리핀에서 태양광 사업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2022년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와, 능력도 없는 저에게 지금의 건물을 소유하게 하시고, 2년 동안 리노베이션을 하게 하셨습니다. 태양광 사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라기보다는, 필리핀의 열악한 전기 시설로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정도입니다.

이들에게 더 많은 기술을 가르치고, 거짓 없이 열심히 일하면 적어도 배고프거나 자녀를 못 가르치는 일은 없도록, 용접·에어컨 설치·청소·전기 같은 일을 가르치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최근엔 이런 계획에 회의적인 마음도 들었습니다. 기술적인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고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정말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그런 부분이 많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 열심히 배우지 않고 핑계만 대는 훈련생들을 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깊이 고민 중입니다.

며칠 전 필리핀 사역자들과의 사건을 겪으며, 저든 전도사들이든 부족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시간대로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들의 솔직한 고백, 건물의 마무리, 지금까지의 훈련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할 필리핀 수빅의 상황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내가 이끌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오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나의 상처도, 아이들이 아팠던 것도 감사입니다.

앞으로 생각했던 일이 기대만큼 잘 되지 않더라도, 저는 계속할 것입니다. 그저 이 자리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만큼 제 역할을 다할 생각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이끄실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만 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이곳에, 정말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김동억, 염혜정 선교사